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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도리의 대중음악 후비기]마이클 잭슨 (1958 – 2009)

등록일 2009년07월31일 17시2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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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7-31
 

“까오!”

이 소리는 1982년 당시 포니2 승용차에서 테입으로 나오던 故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되뇌이던 중독성 있던 추임새였다.

독자중에 몇분은 이쯤되면 락도리가 무슨 글을 올릴지 눈치챌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금세기 최고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지난 6월25일 자택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지구촌 모든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먼저 가시고 이젠 마이클 잭슨이 갔다.

향년 그의 나이 우리나라 나이로 52세, 허나 화면속의 그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요즘 지구촌 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로 가득한 만큼 나도 이 자리를 빌어 동참을 해야겠다.

우선은 그의 사인이나 죽음을 다룬 뉴스 거리는 자제하고 음악적 혹은 엔터테이먼트적 업적에 대한 초점에 관해서 다루도록 하겠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도 섞어서 말이다. 왠지 이번주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아동기 – jackson5

평범한 가장이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마이클 잭슨과 잭슨5의 아버지 조 잭슨은 집에서 쉬는 날 재즈 기타를 연주하곤 했는데 그의 아이들이 이를 곧잘 따라하고 특히 그의 큰 아들 둘이 각각 기타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맡아 따라하던 마이클 잭슨을 보고서는 이들을 팀으로 구성하는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이 5세가 되던 해 아버지 조잭슨은 5명을 ‘지옥 훈련’ 시킬 것을 다짐하며 연습에 매진시켰다. 하루에 2-3시간 연습하여 3년 정도가 지난해 지역 장기자랑 대회(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노래 자랑 같은 TV프로그램)에 출전을 하게 되는데 그냥 노래와 춤에 소질에 있던 일반인들과 3년간 죽을 고생을 하며 연습한 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무대 매너와 실력에 바로 대상을 타고 입소문을 들은 프로모터와 합의해 본격적인 상업 밴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잭슨5의 시작이며 이들은 뉴욕의 유명 흑인 극장식 공연장 ‘아폴로(Apollo)’에서 첫공연을 하게 되었고 이들들은 흑인음악의 당시 최대 메이커 ‘모타운(Motown)’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되어 첫 녹음을 하게 된다.

그 해가 69년인데 ‘abc’와 ‘Who’s loving you’, ‘ben’과 같은 당대 히트곡을 쏟아 내고 이들은 단숨에 미 전역의 대스타가 된다. 특히 착착 죽이 맞는 일사분란한 안무와 어린 마이클 잭슨의 혼이 듬뿍 담긴 보컬과 개인기는 이들의 성공의 핵이였던 것이다.

어린시절을 회자하는 인터뷰에서 마이클잭슨과 그 형제들은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고 하는데 바로 아버지 조잭슨이 본격적인 그들의 매니저를 하게 되면서 트레이닝하는 과정이 얼르고 달래는 식이 아닌 ‘스파르타’식으로 한마디로 죽을 만큼 맞아가며 쌓은 실력들이였던 것이다. 밥을 굶기고 혁대로 때리고 상상하지 못할만큼의 체벌을 가했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마이클은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나중에는 그의 형제와 아버지가 갈라설 만큼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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