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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끼타 필리피나스] 감기와 봉사활동

등록일 2009년05월11일 14시5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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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5-11
 

이경아(26기)

활동분야: 과학교육

활동기관: 북일로일로 주립 기술대학 (Northern Iloilo Polytechnic State Collage)

 

얼마 전 감기 끝으로 ‘폐렴’이라는 사태에 이르러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링거를 꽂고 누워 있으면서 그동안의 봉사활동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별로 바쁠 것도 없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온 것 같다. 벌써 1년6개월이라니...

 

처음 필리핀에 올 때만해도 2년 동안 현지 적응은 잘 할 수 있을지 내심 많이 걱정했는데 지금은 이미 적응해서 생활하는 내 자신을 보며 스스로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다.

같이 왔던 9명의 단원 중에는 중도 귀국하는 6명의 단원들로 현재는 3명이 남아 있는데 조만간 한명이 또 중도 귀국을 한다. 처음 내 목표는 중도귀국만 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은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은 생각과 젊은 단원들의 대부분이 중도 귀국하는 것을 보며 꼭 끝까지 봉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성격이 워낙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할 생각이다.

아무튼 지난날을 돌아보니 필리핀 물리학회도 참석해보고 여행도 하고 잠수 자격증도 따고 현지 학교에서 하는 자원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또 태풍 프랑크로 인해 물난리도 생전 처음으로 겪어보고 현지 주립대학들의 문화 페스티벌에도 참석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병원에 누워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감기와 봉사활동에 대한 나의 대처하는 자세’였다.

 

코이카 해외봉사단 지원 동기

코이카 해외봉사단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생각할 때 아는 분을 통해 알게 됐다. 그때가 90년도로 한국도 코이카를 통해 해외 원조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때는 코이카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도 아니라 말 그대로 후진국 원조로 필리핀을 비롯한 몇 개국에 한정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나는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났었고 해외봉사단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 후,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뭘 할까? 생각 중에 2007년 우연히 인터넷에서 코이카 해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면접관들은 ‘말라리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부터 시작해서 엄청 겁을 줬다. 나는 ‘겁은 나지만 현대의학이 많이 발전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하고 답했다.

 

임지가 필리핀으로 정해지고 나서는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영어권이라 언어 소통의 문제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동남 아시아권이라서 문화도 그리 많이 차이는 나지 않을 것 같고 많은 한국 학생들과 이민자들이 있다고 들어 안심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드디어 2007년 7월9일 필리핀 공항에 입국했다. 2개월 정도의 현지 적응 훈련 후, 북 일로일로 주립 공대 본교가 있는 에스탄샤에 파견되면서 열정과 함께 무얼 어떻게 해야 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혹시 이들이 나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고 ‘해주고도 티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필요한 것을 찾아 실험실도 둘러보고 수업 참관도 하고 교수들과 의논도 나누고 뭐가 필요한지도 물어도 보았다. 그리고 코이카 현지 사무실은 현장 지원 사업을 통한 필요한 실험기구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솔직히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실험 기구을 해주는 것이 제일 필요로 한 것 같았다. 자연과학의 기본은 변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들의 수업 방식에는 기본에 충실하게 가르치는 모습들이 보였는데 단지 실험기구가 없어서 실습을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10명씩 팀을 만들어 실험기구 하나를 가지고 두 시간 동안 돌아가며 실험을 했다. 실험하려고 사온 얼음이 다 녹아 가는데도 한 팀이 실험을 하는 동안 다른 팀들은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실험기구를 지원해 현대적 실험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학교에서도 좋아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일이 잘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사업비를 받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에 물품을 공급하는 분을 통해서 가격 조사를 했었는데 사업을 시작하고 구매 전에 물품을 먼저 보고 싶다고 했더니 본인들은 중개상이고 마닐라 본부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뒤늦게 연결된 한국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일단은 물품들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가격대가 조금 이상했다. 페소로 계산된 거라 일일이 한국 가격과 비교를 하니 실험기구 가격이 많이 부풀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리핀은 대부분 과학기자재 등이 수입품들이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었고 일로일로는 마닐라 사무소에서 다시 중개상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수수료가 있어서 더욱 비싸진 것이다. 그리고 현지 물품 공급업자 한 분은 처음과 달리 왜 갑자기 가격이 비싸졌냐고 하니 커미션을 이야기한다.

내가 너무 무리한 도덕성을 요구한 것일까.. 학교에 기부한다고 하면 오히려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니 저렴하게 해 주겠다고 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 아무튼 물품구입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실험실을 제공한다고 하던 학교측의 의견은 내가 생각해왔던 실험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나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큰 문제가 된 것 같다. 솔직히 선진국 문화와 한국에서 겪어온 것을 기본으로 필리핀 현지인들의 생각과 현실 상황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못해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을 한 것이다. 내가 생각한 실험실의 수준과 이분들이 제공할 수 있는 실험실의 차이점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코이카는 실험실 개보수 비용도 지원이 가능하다. 그런데 학교에서 실험실은 제공한다는 말만 믿고 개보수 비용은 생각지도 않고 실험기구만 제공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었다. 결국 현지 실험실 조사부터 시작해서 물건가격 조사 및 현지 실험기구상 조사까지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내 자신이었다. 처음에 가졌던 좋은 생각은 다 없어지고 현지 기관 관계자들에게는 ‘봉사단’이라는 사실 때문에 화도 못 내고 웃으며 돌아서서 속으로 불평불만이 쌓여서 스트레스가 되고 결국 다른 단원들을 만나면 마구 화풀이를 해댔다. 그래도 고맙게도 단원들이 나보다 어린데도 오히려 ‘다들 그래요~’라며 나를 위로하고 오히려 그럴 땐 ‘이렇게 하세요’ 라며 충고도 해주었다. 결국은 불평과 불만이 쌓여져 사업뿐 아니라 봉사활동 자체를 포기하고자 하는 생각도 했다.

한편 사업은 사무실의 도움으로 실험실 수리비용을 부풀려진 물품비를 충당하고 현지 사정에 맞게 실험기구도 조정하고 multi media를 구입하는 등 실험실 사업을 대폭 수정해 다시 진행에 이르렀다.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지낸 덕분인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필리핀은 1시간 하면 2,3시간이 걸리고 하루 하면 1, 2주일 걸리고 일주일 하면 한두 달이 걸리는 것이 보통인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 기다림의 미덕도 있고 인내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도대체 나한테 ‘인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별로 답답해 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월아~ 내월아~ 하며 기다린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이제는 알아서 ‘한 시간 하면 또 두세 시간 걸리겠군’, ‘하루 하면 일주일’을 생각하며 적응해나가고 있다. 결국 6개월 정도를 생각했던 현장 지원 사업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거의 마무리가 되어간다. 두 번의 지붕공사와 창문공사를 거치며 물품은 한국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고 이제 기증식을 앞두고 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되어가는구나 했는데... 이들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나만 보면 아직도 뭔가를 더해줄 수 있는 줄 알고 뭔가를 꾸준히 요구했다. 사업비를 다 썼다고 해도 또 뭔가 필요하면 나를 바라보고 코이카에서 해주면 안되냐고 물어봤다. 정말 난감했다. 전에는 진작 말을 했으면 해줬을 텐데 왜 말 안했냐고 하면 부끄러워서 라고 하더니 지금은 당당히 필요한 거니 당연히 내가 해줘야 된다고 한다. 나보고 어떡하라는 건지...

고민 아닌 고민들이 계속되는 나날들이 지나가고 사업은 변경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완성된 실험실과 준비된 실험기구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다. 한국 코이카 봉사단으로 와서 뭔가는 했다는 자부심과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물품을 구입한 관계로 한국 제품들이 필리핀 실험실에 있다는 것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알리는데 한 몫 한 것 같아 더없이 기쁘다.

요즘은 현지 기관도 고마움의 표시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고 1년 더 연장해서 있으라고도 한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젊은 총장 덕분에 학교도 외부 자금 지원을 받아 많이 발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감기

작년 2월 감기가 시작됐다. 머리만 아프고 그냥 한국에서 하듯이 감기이니 한 일주일 아프면 되겠지.. 생각하고 낫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꾸 기침은 더해지고 숨쉬기도 힘들고 가래도 나오고 갈수록 심해졌다. 마침 필리핀을 방문 중이던 어머니는 집안 내력이 약을 잘못 먹는 것을 아시니 식사 요법 등을 이야기 하며 걱정하시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한달을 거의 아팠는데 어떻게 뽀족한 방법이 없었다. 생강 다린 물부터 시작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기침은 계속됐고 결국 1년에 한번 있는 건강검진에서 엑스레이 결과로 약한 폐렴증상이 있다는 결론을 의사로부터 받았다. International SOS의 도움을 받아 일로일로의 닥터스 병원에서 지정된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 3일분의 약을 먹고 기침과 폐렴증상이 회복됐다. 결국 나의 고집과 버티기로 한 달간 아플거 다 아프고 결국은 약으로 치료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1월 중순 다시 감기 기운으로 시작해 고열과 목감기가 지속됐다. 이번에는 주저없이 작년에 다닌 병원으로 바로 달려갔다. 10일간의 약 처방 후 완화되는 듯하다 결국 다시 고통이 시작돼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약 처방. 마지막 확인을 위해 의사를 찾았는데 여전히 약간의 오한과 기침이 있었다. 결국은 엑스레이 촬영해 오라더니 ‘폐렴증상’이란다. 이번에는 입원을 하라고 한다. 다시 International SOS의 도움을 받아 오후에 입원했다. 이틀간의 병원 치료 후 퇴원해 일주일간의 약 처방을 받았다. 한 달간 총 치료 비용이 2만8000 페소 정도의 의료보험비가 사용됐다. 참고로 하루 잡부의 일당이 100-200 페소 정도한다. 일반인들도 의료비가 비싸서 병원가기가 두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KOICA 봉사단은 의료 보험도 되고 의사 선생님도 좋은 약을 사용한 것 같다.

 

글을 마치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관들과의 마찰과 갈등.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감기 등은 내 자신을 변하게 했다.

모든 환경적인 문제들과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생각과 마음이 변하면 모든 것이 지옥도 되었다. 천국도 되었다 하는 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현실에 역행하지 않으며 순리와 관용으로 대처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극복이 될 것이다. 이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또한 약이 되어 줄 것이다. 감기도 언젠가는 회복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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