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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진실 속의 거짓과 거짓 속의 진실을 바라보는 옆으로 누운 산

등록일 2009년05월11일 14시5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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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5-11
 

세상은 참 요지경 인 것 같다. 무슨 목적이 있기에 현실에 타협을 하고 무리를 만들고 내편과 니편을 나누어 싸운다.

힘들게 건설을 하고 그 힘들인 업적을 파괴를 통해 자신을 위한 건설을 하기 시작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한 내용을 발취 해 본다.

쭈글쭈글한 주름이 손등과 얼굴을 뒤덮은 노인은 들어올 수 없다며 가라는 손짓을 하다가, 도사가 차창을 내리고 얼굴을 내보이자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얼른 철문의 빗장을 풀었다. 만석은 열린 문으로 철문을 통과했고, 사이드미러로 후방을 확인하니, 노인은 빗장을 다시 지를 여유도 없는 듯 통나무집 경비실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 전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만석은 그때부터 길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굽이 굽은 조선소나무와 푸른 대나무들이 자웅을 겨루듯이 가로수 역할을 맡고 있었고, 적당한 간격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석상이 서 있는가 하면, 아기천사와 미카엘, 라파엘 천사장 입상이 세워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숫자였으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인도 사원에나 있을법한 각양각색의 성교조각이 사실적인 묘사를 뽐내며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석상들과 대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치고 나자 비로소 산 중턱의 커다란 분지가 눈에 들어왔다.

분지 중앙에는 십 층 대리석건물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고, 양 옆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 마디마디에 황토 집과 통나무집이 들어서 있었으며, 암석과 조경수로 꾸며진 연못 아래에는 여름철에 이용하는 듯 한 야외 풀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석은 도사의 지시대로 대리석건물 현관 앞으로 차를 몰았다. 사람들이 현관 앞에 도열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차가 멈추자 사람들은 도사를 향해 목례를 보냈다. 만석은 사람들 뒤, 현관 앞에 세워진 동상을 가리켰다.

"저거, 스승님 맞지요?"

"만석아, 언제까지나 자기들을 속여주기를 바라는 게 인간인 것이라, 이태리놈들이 그런 말들을 해놓았느니라. 인간은 속기를 바라니 실컷 속여먹으라……여기서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거라"

그렇게 말한 도사가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은 또 고개를 숙였다. 도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사가 현관 쪽으로 앞장을 서서 걸어가자 비로소 현관 앞의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도사의 얼굴과 긴 머리와 긴 수염, 마치 레닌그라드의 스탈린 동상처럼 현관 앞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도사의 동상을 넋을 잃고 쳐다보던 만석이는 십 분이 지났을까,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이십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깍듯이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 여인은 만석이가 허둥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물 뒤편에 주차장을 안내한 후 만석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는……?" "스승님이요?" "네" "정말 스승님이세요?"

만석은 자신을 놀리는 듯 한 젊은 여자애의 표정을 살폈다. 흡사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만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한 번 자기가 모시는 스승님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사부님의 동생이라고 하시던데요" "동생?"

"목사님이시고, 대사부님의 친동생이시라고……들었거든요"

만석은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의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친동생이세요?"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친동생이겠지요" "..."

여인은 만석의 대답이 신통치 않은지 미심쩍은 얼굴이 되었다가 얼른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잔설이 남아있는 산길로 앞장서서 안내를 했다.

"참, 목사님, 제 이름은 소담이에요" "소……담……" "네. 한소담"

소담은 다시 미소를 짓고는 만석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만석은 황토집 거실에도 도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먼저 시선이 갔다. 사진은 아니었고 목탄으로 소묘를 한 데생이었다. 수염과 얼굴형, 그리고 산신령처럼 인자하게 웃는 미소 띤 얼굴이었다. 아래에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훌륭한 제자가 있을 뿐 훌륭한 스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 대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저 말씀이 제일 좋아요"

소담은 거실 다기 탁자에 앉아 전기포트로 찻물을 끓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대학 다닐 때 들었던 말씀이에요. 온 세상이 온통 스승이다. 훌륭한 제자는 그 세상을 스승 삼아 전체를 배운다. 도적에게서도 훌륭한 점을 배우고 성자에게서도 나쁜 점은 버린다. 위대한 스승이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은 가장 미련한 제자이며 그 제자는 그 스승이 정해놓은 가치에 포로가 된다. 고로 포로에게 자유란 없다. 오로지 세뇌와 최면만 있을 뿐이다……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음, 그거야 그렇지"

만석은 말뜻이 잘 정리되지 않았지만 대충 긍정을 했다.

"위대한 스승은 관절염이 걸려서 다리를 절룩거리는데, 멀쩡한 제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하나같이 스승처럼 되기 위해서 다리를 절룩거리고 다니니 생각만 해도 재밌잖아요. 스승이 죽고 나서도 그 제자의 제자들은 평생을 절룩거리고 다닐 걸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해요……안 그래요 목사님?"

"그거야……" "그렇지요?" "그렇지" 그제서야 소담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목사님은 천국과 지옥을 믿으세요?" "그거야……"

"목사님은 가장 편할 때가 언제에요?" "그거야……누구나 누워있을 때가 가장 편하지"

"틀렸어요. 적당히 눕고 싶을 만큼 누워있어야 편해요. 그 적당함에서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편함은 불편함이 되고 고통이 되고 지옥이 되요. 서 있고, 앉아 있고, 누워있고, 모든 동작이 적당하면 그 자체로 천국인데, 지나치면 지옥이 되요. 반대로 불편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옥이 길어질수록 천국은 코앞에 있어요. 몸에 경련이 날 정도로 서 있다가 앉기만 해도 즉시 천국이에요. 그러나 그 천국도 지속이 되면 어느새 지옥으로 변해요.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지요. 영원한 천국은 권태가 되고 영원한 지옥은 고통이기에 그 사이를 오가는 것만이 권태와 고통의 해독약이거든요. 그러니 천국과 지옥은 스스로의 조절에 달려 있는 것이지, 누군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보내줄 수도 없는 것이지요. 세상의 어떤 법칙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세상에는 여전히 절룩거리면서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지가 않아요, 그렇지요 목사님?"

소담이 찻물이 울어 난 작설차를 만석의 잔에 주르륵 부어 주었다.

"그게 말이지……소금장수와 우산장수 같은 얘기야……"

만석은 이제 자연스럽게 말까지 놓으면서 용성에게 들었던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얘기를 소담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한쪽도 버릴 수가 없는 거지, 사랑은 뭐니 뭐니 해도 기다려주는 것이거든. 소담양 말대로 절룩거리고 다니는 짓은 딱하지만 언젠가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게 되지 않을까"

작설차로 입술을 축인 소담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치 촌장님이 하시는 말씀 같은 데요"

"촌장님?" "모르세요?" "글쎄"

"대사부님의 제자이신데요, 우리 마을의 책임자이시자 법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모든 걸 알게 되었어요. 사실 우리 마을은 법이란 게 없어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만석은 이 말에 구미가 도는지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걸 아셔야해요. 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자기 스스로 천국과 지옥 사이를 조절하면서 오갈 수 있어야 해요. 예컨대 어떤 승려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런 설법을 하는 걸 들었어요. 원수지간이란 백퍼센트 은혜 입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는 원수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은 쪽이나 준 쪽이나 제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배은망덕이니 뭐니 하면서 원망을 하게 되는 거라지요. 그래서 중생이란 너무 사랑해서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 때문에 상대를 구속하게 되고 그마저도 뜻대로 안되면 불란이 일어나지요.

법구경에는 사랑하는 이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이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이는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이는 만나서 괴롭다, 이런 같은 주장이지만 이런 건 완전히 절름발이거든요. 사랑을 느끼니 미움을 느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하지 말라고만 하면 그건 감각과 감정을 죽인 채 돌이 되라는 말이거든요. 문제는 사랑과 미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집착에 있는 것이에요.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며 조절한다는 건 그 집착에 머물지 않는다는 거에요. 천국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거기에 머물면 누워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거에요. 사랑은 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글쎄?"

"구속은 가장 우둔한 짓이에요. 그것은 강제로 누워있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 구속의 사랑이, 누워있음의 편함이 유지되는 동안은 행복과 안락을 느끼겠지만 이제 누워만 있는 게 지속 되어서 기지개를 펴고 앉아도 있고 싶고, 서 보기도 하고 싶고, 걸어가 보기도 싶고, 뛰어 가보고 싶기도 한데, 그 사랑이라는 구속으로 다른 행동을 못하게 짓눌러가며 누워있게만 하면 이제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닌 고통일 뿐이거든요. 그 누워있는 기간을 현대과학은 사랑의 유효기간은 1년에서 3년 사이라고 단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정답은 아니에요. 능력이 있고 활동력이 활발한 사람은 몇 개월일 수도 있구요, 그에 반해 능력이 없고 활동력이 약해서 죽을 때까지 자리에 누운 채 상대방이 보살펴주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지요. 따라서 평균치의 사람은 1년에서 3년 사이라고 한다면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그 이상 묶어두려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위안일 뿐이지요, 물론 어떤 사랑도 자기위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더 벌어지는 거지요" "그러면……백년해로 하는 사람은 다 누워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인가?"

소담이 설마요, 하는 얼굴이었다.

"백년해로라는 건, 앉고, 서고, 눕고에 있어서 서로가 현명했다라고 할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그건 아름다운 집착이지요.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그런 사람을 만나려고 태어나는 게 아닌가요. 하지만 그런 대상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 대상이라고 여겼는데 세월이 지나면 아니라고 밝혀지는 게 또 그것이고, 겪어야만 아는 게 또 그것이지요. 우리 마을 사람들도 그것만은 아름다운 집착이라고 부러워해요.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관계, 스스로 그 사람이면 족한 관계……하지만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그건 그것대로 아름답지만, 내가 사랑할 만큼 했고 그것을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옆으로 세운 산이라고 해요……"

"옆으로 세운 산?"

"그러니까 본래 산은 ^^ 이런 기호잖아요"

소담은 다탁 옆 메모지에 ^^ 기호를 그렸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다 산을 옆으로 세워놓은 이런 기호를 그렸다. 소담은 먼저 그린 산 기호를 (1)번이라 불렀고 옆으로 세운 산 기호를 (2)번이라고 불렀다.

"1번 산을 올라가려면 한걸음 한걸음 공을 들여서 올라가야 해요. 인내하고 서로 벗이 되어서 정상에 도착하면 함께 한 시간과 정이 들어서 말 그대로 동반자가 되는 거에요. 내리막길도 함께 내려올 것이고 또 앞에 놓인 인생이라는 산을 손잡고 함께 오르겠지요. 인생이란 산 넘어 산이고 물 건너 물이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쪽이 동행을 포기할 수가 있어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요. 좀 천천히 등산을 하고 싶은데 상대는 속보로 걷는 것이 몸에 배여서 보폭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이제 힘든 등산보다는 산 중턱쯤에 돗자리라도 펴고 휴식이나 즐기다가 내려오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고, 아무튼 몇 개의 산을 넘고 보니 이제 이 상대와는 동행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가 있지요. 만일 상대가 그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대의 뜻에 동의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상대의 마음이 그런 쪽이 아니라, 아예 등산로 자체를 바꾸고 싶거나 동행 자체를 다시 선택하고 싶은 거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 지금의 세상관습이지요. 힘들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 등반하기로 서약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에 계약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중에서도 사랑이니 의리니 이런 것은 계약으로 묶어둘 수가 없지요. 사랑을 계약으로 묶어서 유지한다면, 의리를 계약으로 묶어야만 유지된다면 그건 이미 사랑도 의리도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니까요. 어느 한쪽이라도 사랑이 깊어서,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가고 싶다면 그거는 사랑이겠지요. 상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상대가 이제 그만하고 싶다면 좀 더 현명한 동반자를 만나서 인생길을 잘 걸어가길 빌어주며 보내준다면 그것도 사랑이겠지요. 그런데, 이제부턴 혼자서 산길을 걷는 게 외롭고 두려워서 놓아주지 않는 거라면 그것은 좋은 시작을 나쁜 끝으로 맺는 지름길이거든요. 그럼에도 세상은 남녀의 관계를 이런 계약으로 묶어 놓고 지켜준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러니 이상한 현상과 모순이 발생하는 거예요.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상대가 행복을 찾기 위해서 다른 상대를 찾는다고 하면 배신을 떠올리고 원망을 품고 심지어 원수가 되기도 하지요. 그 텔레비전에 나왔던 승려가 했던 말 그대로에요.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우겨대며 착각하는 집착 속에 있었던 것이니까요. 애초부터 조건을 따지고 철저한 계산 속에 물이 든 상태로 동반자를 택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안주는지, 자신을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혜택을 주는 것인지, 안 주는 것인지, 손익계산에 골몰해서 끝장을 볼 때도 철저한 장사꾼이 되지요. 말 그대로 계륵 같은 관계였다고나 할까요?.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만났고,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시큰둥해하다가, 막상 떠난다고 하면 남 주기는 아깝고 그 나마라도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잡아두고자 하는 심보……한 사람을 원 없이 사랑해 본적도 없고 한 사람으로 인해 원 없이 아파할 마음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심보……"

"원 없이 아파할 마음……?" "원 없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 없이 아파해야 할 준비가 필수이니까요"

"중요한 건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에요.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 그것이 아니면 나는 평생 사랑하는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황량한 사막에서 메마른 감정으로 살다가 죽을 게 아니었던가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 촌장님은 대사부님을 굉장히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신 것 같아요……원 없이 아파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하셨다고 하시니까요"

"원 없이라……?"

"원 없이 사랑하고 원 없이 아파하는 것, 그것이 촌장님 사랑의 모토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것을 다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면서 이런 짓을 한다고 원망하는 것까지가 나의 사랑이었구나 알아차리는 것, 왜냐하면 사랑은 말로 표현하자니 준다고 하는 것이지 줄 때조차도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거든요.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 아닌 일은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지,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중심이니까"

"이 산은 서로가 의식이 높아야 해요. 말하자면 옆으로 누운 산은 암벽을 떠올리면 틀림없어요. 아래서부터 한걸음 한걸음 인내를 가지고 올라가는 산이 아니라 곧바로 정상에서부터 시작하는 산이니까요. 예컨대, 이산은 목숨을 건 산이지요. 응무소주이생기심, 무주상보시, 이것이 되 있지 않으면 추락하는 산이에요. 누가 심판하거나 단죄할 방법이 없어요. 사랑을 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스스로의 바램과 욕심 때문에 스스로 지옥에 떨어져버리니까요. 정상에서 자일을 놓치지 않는 방법은 오로지 무집착 이거든요. 집착이 들어가면 자일은 끊어져버리니까요. 사랑은 하되 그 감정을 소중히 여길 뿐 상대에게 요구하거나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해요. 호감이 가고 느낌이 좋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사랑을 나누지만 소유하려하거나 독점하려해서는 그 감정으로 인해서 화마에 사로잡히게 되지요……그 불이 활활 타오르면 스스로 관하는 연습이 되어 있는 경우에도 불길에 정신을 잃을 정도지요. 원 없이 사랑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보게 되고, 원 없이 아파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보게 되는 거지요"

"완전히 도 닦기네?" 소담이 빙그레 웃었다.

"도 닦기요? 그거 아세요. 하루 온종일 봄을 찾으러 이산 저 산 강 너머까지 헤매던 아이가 완전히 지쳐서 집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봤는데요. 글쎄 그 거울에는 백발의 노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거였어요. 아이는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봄을 찾으러 온 세상을 돌아다녔던 거였어요. 일장춘몽이고 덧없는 세월임에 실망을 하고 뜰에 나와서 댓돌을 우연히 쳐다보았는데, 댓돌 틈으로 매화꽃이 피어있는 것이었지요. 봄은 아이가 있는 집에도 찾아오는 것이었는데,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봄을 찾아 헤매 다녔던 것이지요. 봄이 있다는 곳을 찾아가는 동안 계절은 변해 있었고, 또 있다는 곳을 찾아가는 동안 또 변해 버린 거였지요. 그래도 그 아이는 생이 남아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와 봄을 맞이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봄을 찾겠다고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젊은이나 노인들이 무수하거든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도니 종교니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전부 우리 발길 닿는 곳에 있을 뿐이니까요"

“이 세상에 남은 건 나와 옆으로 누워있는 산 그것뿐이에요. 이젠, 앞으로 가도 30방 뒤로 가도 30방, 제자리에 머물러도 30방, 그것뿐이에요" 소담은 그렇게 말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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