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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끼타 필리피나스] 함께해서 좋았다.

등록일 2009년03월28일 14시1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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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3-28
 

이성경(26기)

활동분야 : 임업

활동기관 : 민도로 주립대학 (Mindoro State Collage of Agriculture & Technology)

 

필리핀에 도착해서 2 달간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고 이제 내가 앞으로 2 년 동안 살아갈 곳에 왔다. 그 동안에 어느 정도 필리핀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서 배웠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나와 같은 분야에서 학교 교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료 말빈(Mervin)을 만났다. 여느 필리피노와 마찬가지로 항상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은 몹시도 서툰 영어 실력과 낯선 환경에 대한 부적응 탓인지 말하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고 날이 더운 것도 아닌데 식은땀으로 샤워를 하곤 한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 자신은 없다.

 

 앞으로 내가 교육해야 할 농대 학생들과의 소개받는 시간, 가슴이 살짝 떨려온다. 이미 전임 교수는 만나서 안면이 있지만 학생들과는 처음이다. “Hi, I'm Tom..." 간단한 인사와 그 동안 연습했던 약간의 자기소개가 끝난 후 다시 서먹서먹해졌다. 정말 간단한 인사 몇 마디 말고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학생들 또한 영어로 말한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질문을 하라고 해도 잘 하지를 못한다. 한 학생이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웃으면서 가르쳐 준 것이 30분 동안 소개 하면서 받은 질문의 전부이다.

 

이런 상태로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말은 안 통하고 누군가와 말을 10분만 해도 땀으로 샤워하는 것은 기본이다. 몇 되지도 않는 학생들과는 눈인사 정도가 전부다. 이 상태가 이대로 계속돼서 내가 활동을 끝낼 때까지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서먹하고 붕 떠 있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은 아닌지, 언어 공부를 꾸준히 한다고는 하지만 귀국할 때까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만 한다.

 

마음이 심란한 이때에 말빈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이 왔다. 곧 학생들과 현장 실습도 하고 학교 산도 보여줄 겸해서 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산에 등산할 예정이란다. 함께 했으면 하는 요청이였다. 그동안 특별한 활동 없이 심심해하고 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 산행도 무언가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좋아서 흔쾌히 허락했다.

 

한국에서야 산을 많이 다녀 봤지만 필리핀에서 산은 아직까지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었으므로 철저히 준비했다. 등산화에 조끼에 긴 바지와 긴 소매 옷까지! 그리고는 코워커와 학생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래도 산에 가는데 반바지와 반팔은 기본에 다들 슬리퍼를 신고서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사람들 참 모르는구나. 산에 오를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해야 하는 것을~ 저러다 나중에 발목이라도 삐고서 후회하지...

하지만 곧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학교를 떠난 지 5분도 안되어서 알았다. 학교에서 산을 오르기 전에 건너야 하는 조그마한 강이 있었다.

 

건기에는 물이 없어서 그냥 건널 수 있지만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위험해서 건너갈 수도 없다고 한다. 이날은 몇 일간 비가 내리지 않아서 무릎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화를 신고서는 젖지 않고 건널 수 없는 깊이였다. 학생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쉽게 건너간다. 바지가 약간 젖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건넌다. 내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건너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나에게 온다. 조니(Jorney), 이제 21살이 되는 3학년 학생으로 나름 그 그룹에서 고학년 학생이다. 나에게 다가와서 등을 내민다. 내가 여자도 아니고 허약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옷만 잠시 걷고 건너면 되는데 그것을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업히란다.

 

 그 학생이 좀 건장하고 튼튼해 보이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나보다 15cm 는 작은 키에 몸무게도 나보다 10kg 이상 적어 보인다. 나는 괜찮다~ 내가 그냥 건너면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먼저 강을 건넌 코워커와 학생들도 괜찮다고 어서 업히라고 한다.

 

20살이 넘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 남의 등에 그렇게 살포시 업혀 보기는 정말 처음이다. 창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생각해 주는 그 학생에게 고마울 뿐이다. 내가 뭐 잘해준 것이 있다고 나를 위해서 이런 고생을, 정말 고마울 뿐이다.

 

학교 산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는 산인 줄 알았다. 근데 이건 산 입구를 지나온 지 10 분 만에 무슨 밀림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경사도 너무 심해서 긴바지를 입은 내 다리가 앞뒤로 너무 많이 벌리자니 뻑뻑해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보통 야트막한 한국산의 경우 코스가 단조로운데 반해 이쪽은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기 때문인지 들쑥날쑥, 한참 올라가다 쭉 내려가다 길이 제대로 없는 곳은 칼로 쳐서 길을 내면서 그렇게 이동해 갔다. 한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우리들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체력에 자신 있던 나도 좀 힘들다. 땀으로 목욕도 했다.

 

쉬는 동안 학생들은 몸에서 무엇인가를 떼어내고 있다.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물어보려는 찰나 한 학생이 다가오더니 잠시 가만히 있으라는 몸짓을 보인 후 내 다리에서 무엇인가를 떼어낸다. 가만히 보니 산거머리가 내 다리 쪽에 많이 달라붙어 있다. 긴바지를 입었지만 어느 사이엔지 기어 올라와 물었다. 피도 엄청나게 빨았는지 다들 토실토실하다. 제일 높이까지 기어 올라온 놈은 배꼽보다도 위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내 피를 잔뜩 빨아 먹은 산거머리 그 놈을 떼어낸 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냥 놓아 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원래 그런 것이란다. 그래도 나한테 피해를 주는 해충을 죽이는 일이 당연한 것을, 그들은 놓아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한다. 거머리가 좀 밉기는 하지만 나도 그냥 놓아 보내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 정상을 지나서 다른 편으로 갈수록 길이 점점 사라지고 나무도 더 우거져 간다. 일일이 잡초를 칼로 쳐가면서 어느 곳에서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내려왔다. 그러다 만난 나무 군락. 대부분이 나라 나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놀라고 높이가 까마득해서 놀랐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별로 높지도 않고 학교와 인근주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그런 산에 장정 6~7명은 손에 손을 잡고 감싸 안아야 한 바퀴 겨우 돌만큼 굵고 높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그런 대자연이 이렇게 생활 터전 가까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한참 나중에 다시 여러 번 산을 찾은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지만 이 민도로 지역에는 망얀족 이라는 원주민이 아직도 산속에 살고 있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쉬웠다. 아직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한 계곡을 잡고 그냥 아래로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뭐 물론 중간에 길이 없으면 길을 내고 경사가 너무 심하면 돌아가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덩굴을 끊어 나무에 묶고 줄처럼 잡고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산을 내려와서 평지에 다다르니 얼마 하지 않은 산행이 길게만 느껴지고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물을 어느 정도 준비 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물만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습지와 같이 발이 무릎까지 잠기는 곳을 다시 한 번 업혀서 통과하고 도착한 야자나무 농장. 말이 좋아 농장이지 넓디넓은 풀밭에 야자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다.  야자나무 위를 보니 야자열매가 탐스럽게 많이도 열렸다. 학생들도 다들 목이 마른지 야자나무를 한번 쳐다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웃는다.

한 학생이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말이 쉽지 10m 도 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쉽게 한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발로 밟아서 야자열매를 떨어뜨린다.

 

각자 한 통씩 들고 즉석에서 쪼개서 마시는 야자수는 정말로 맛있다. 한낮의 필리핀 날씨 속에서 하루 종일 매달려 있던 녀석 같지 않게 그 물은 시원하고 달기까지 하다. 물을 다 마신 후 껍데기를 이용하여 스푼을 만들어 퍼먹는 야자 속은 또 다른 일품요리다.

야자열매에 얼굴을 묻고 먹고 마시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한번 웃고는 또 먹고 또 먹었다. 배가 출렁출렁 거린다. 딱 하나 먹었는데...

 

아직도 말이 100% 잘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표현이 안 되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아직도 대화가 끝난 후에는 식은땀을 닦아 내야 한다. 학생들도 아직까지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내 타갈로그 실력이 어느 정도 늘어서 간단한 말은 한다지만 그것도 아주 조금이다. 그래도 이제는 학생들과 얼굴만 마주해도 웃음이 나오고 즐겁기만 하다.

말이 조금 안 통하면 어떤가. 생각이 조금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조금 다르면 어떤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린 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웃고 살았던가? 언젠가는 내 일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지금처럼 항상 웃으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고 싶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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