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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추억 도시락 (1편)

등록일 2009년03월27일 14시1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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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3-27
 

요즘 한국의 모든 학교들은 급식을 하고 있는 까닭에 종종 단체 급식에 따른 식중독이나 비싼 급식비에 비해 터무니없는 속내용이 매스컴의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도시락 세대와 급식 세대는 또 다른 문화적인 세대 차이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추억의 도시락은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자식을 주눅들지 않게 하려는 어떤 엄마들에게 있어서는 화려한 종합 선물 꾸러미같이 준비되었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어느 가정에서는 매일같이 부담으로 다가섰던 애물단지였으리라.

 

그나마 맨밥에 깍두기도 못 싸가지고 오는 친구들도 분명히 그 시절에 있었는데 사교적인 녀석들은 연신 얼굴에 웃음을 띄고, 도시락 뚜껑을 들고 돌아 다니며 모든 학우들의 도시락에서 일정량을 아주 공평하게 갈취(?)하기도 했다.

 

다소 소심한 아이들은 아예 점심 식사 때면 바깥으로 나갔다가 점심 시간이 마치면 어김없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짝조차도 어디에 갔다 왔냐고 묻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사춘기였던 우리들의 불문율이었다.

 

그 당시 도시락은 각 가정의 경제 지표를 알려 주는 바로미터의 역할도 하였다. 특히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시커먼 원통의 보온 밥통을 들고 가느냐, 가방안 책 들 사이에 사각형의 양은 혹은 철제 도시락을 가져 가느냐 하는..

사실 이 문제는 내장형과 외장형이라는 쉽게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하드웨어여서 중상층과 중하층을 간단하게 구분 짓게 하기도 했다.

철제 도시락을 가져 온 친구들은 교실 중앙에 설치되어 있던 조개탄 난로 위에 무슨 탑을 쌓듯이 서둘러 올려야 했다.

 

주번의 역할 중 쉬는 시간 사이사이에 일층에서부터 옥상까지 계속 위치를 바꿔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게으른 주번 덕에 가끔 밥 탄 내가 교실에 진동하기도 하였지만.

간혹 주번들 중 악동들이 한, 두명 있기 마련인데 체육 시간이 점심 시간 이전에 있는 경우 이들의 만행은 일일이 급우들의 도시락을 다 열어 보고 맛있는 반찬을 전혀 티 안 나게 조금씩만 꺼내 먹었는데(절제의 미학이 그렇게도 중요하건만) 간혹 진주햄 소세지의 유혹에 넘어가 도시락 주인으로부터 눈 흘김과 원성을 받기도 하였다.

 

회상해보면 일반적인 도시락 반찬들로 멸치볶음과 콩장, 오뎅볶음, 김치볶음, 계란 장조림, 감자볶음, 오징어채 볶음, 단무지, 오이지무침 등이 주류였던 것 같다.

잘 익은 깍두기를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사용했던 마요네즈병에 담아 오기도 하였고 계란 후라이를 밥 위에 얹어 오기도 했는데, 사실 이 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밥 위가 아니라 밥밑으로 깔아 혼자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야비한 비상 식량(?반찬)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반찬들 중 좀처럼 그 누구의 도시락에서도 보기 힘들지만 간혹 쥐도 새도 모르게 싸왔다 사라지는 것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귀공자 반찬 4종 세트.

진주햄 혹은 백설햄 분홍색 소세지를 계란물에 입혀 살짝 구워 낸 소세지 부침개. 그 당시 우리가 정확하게 구분하여 고증할 수 없었던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 장조림. 김까지 깔아 넣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김 없이도 보기만 해도 행복한 계란말이. 전 날 제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로 판단되는 동그랑땡을 위시한 각종 전 혹은 부침개.

이런 반찬을 내가 싸가는 날은 등교길도 힘이 났고, 짝이나 내가 친한 친구가 싸왔다면 하이 파이브라도 나눌 지경이었다.

 

그 당시 친구들의 행동들도 별스러웠는데 내 친구 한 녀석은 어떠한 음식에도 빙초산을 뿌려 먹는 친구가 있었다. 라면에도 자장면에도.

 “너 식초를 넣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니?”

 “아니, 그래야 아무도 안 뺏어 먹어”

(뒷 날 나에게만 알려준 사실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열 번이나 더 받고..)

자기의 입맛을 희생하면서까지 자기 몫을 온전히 얻고자 했던 영악했던 그 녀석 엉덩이에 살짝 비쳐진 원숭이 꼬리를 확 잘라 꼬리 곰탕이나 해먹어 버릴까..

중·고등학교를 보냈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의 한국의 겨울은 그렇게 추웠고 가난한 배고픔이 아주 짙게 묻어져 있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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