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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맛있는 통닭 이야기(1편). 세 여인과 사는 방법

등록일 2009년03월06일 14시0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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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3-06
 

어렸을 적 약주를 한 잔 걸치시고 늦게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거의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아마도 누구랑 어디에서 만나셨느냐에 따라 들고 오시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직장에서 걸어 오시는 날에는 오는 도중에 위치한 셈베이 과자가 여러 종류의 모습으로 누런 봉투에 담겨져 오고, 거래처이신 분과 요리집에서 드신 날은 분식집의 물만두가 아닌 제법 멋지게 생긴 종이 봉투에 얇게 져며 만든 베니어판 도시락에 담긴 기가 막히게 맛있는 물만두. 집에서 서너 정거장 떨어진 삼양 시장 골목의 고기집에서 누구를 만나신 날은 그 근처에 유명하다는 통닭이 누런 봉투에 기름이 조금 배어 나오며 버스안의 손님들의 입맛을 얼마나 자극했을까.

 

통닭이 우리가 자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 오면 그 유혹적인 기름냄새에 선 잠은 달아나고 우리들은 모두 일어나 자리들을 차지했다.

그때 당시 장가도 안간 외삼촌이 우리 집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살점은 조금 드시고 우리가 먹다 남긴 뼈들을 많이 물어 뜯으셨다. 젓가락으로 뼛속을 파내 드시면서. 우리들에게 이 뼈안에 들어 있는 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하시면서.

우리는 한 명의 경쟁자가 우리에게 전혀 관심 없는 부위를 좋아한다는 말에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재작년에 외삼촌 내외분을 필리핀으로 모신 적이 있다.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기신 외삼촌에게 중국집에서 빼갈과 닭튀김을 주문한 후 그 때 그 시절을 얘기하자, 내가 그랬나. 근데 정말 그 뼛속 맛있는 거야”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버지 눈치도 보였겠지만 또 조카들 더 먹게 하려고 그러셨는지 아무튼 그래서 생긴 습관이 이 뼛속의 맛을 알게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원래부터 그 뼛속을 좋아 하셨던 것인지 지금은 외삼촌조차도 아실 길이 없다.

아마도 맛이라는 것이 그런 모양인가 보다. 어떤 연유로든지 각인되고 기억되어 버린 맛이 그리운 것이다.

 

나는 한 아내와 두 딸들과 살다가 최근 두 딸들이 갑자기 날개가 생기고 변태하는 바람에 갑자기 세 여인과 한 지붕에서 살게 됐다.

집 안에 남자라고는 나 혼자 있는 터라 다소 강하게 키운답시고 말도 그냥 남자 아이들 키우듯이 새끼라는 소리도 잘 사용하고 그랬는데…

Suddenly!!!!! 사춘기를 보내고 또 보내는 과정 중에 있는 딸 들의 하나밖에 없는 남자인 아빠를 향한 잔소리와 태클이 점점 심해진다.

 

물이 튄다고 아빠의 직립형 소변 자세를 문제 삼고 (이건 단군 이래 별로 흠잡을 수 없었던 남성의 만성화되어 있는 고유한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자세로의 전환(이걸 coming out 이라고 해야 하나?)을 은근 슬쩍 권면하기도 한다.

구구절절한 얘기는 그렇고 어느날 급하게 나가야 하는데 딸아이의 핸드폰이 필요했다. 낮잠을 자던 딸은 아빠가 성화를 부리며 핸드폰을 가져 가려 하자 짜증을 낸다.

워낙 급한 성격에 나도 모르게 격정의 큰 소리들이 거침없이 딸에게 퍼부어졌다.

감정 통제를 잃어 버린 나는 결정적으로 더 크게 야단을 하며 바깥으로 나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곧 딸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핸드폰을 들고 따라 나온다.

“아빠 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자기 자식에게 야단을 치시면 어떡해요. 가져 가세요”

자존심이 상해 가져 가지 않으려다 정말 급했던 터라 서둘러 받아 나갔다.

 

교회에서 성가대 회식하는 음식을 만들러 가는 길인데 그렇게 하기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눈물을 흘리던 딸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내가 그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런 마음으로 음악 세미나까지 겨우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딸 아이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고 하는데 영 딸 아이는 대꾸조차 없다. 이윽고 아내가 안방에서 자기랑 얘기 좀 하잖다.

 

아내의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딸아이에게 한 폭언들은 폭력이며 그건 딸아이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실제로 잘못한 마음이 들었고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잘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었던 나에게 이건 하나의 충격이었다.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염려, 죄책감은 내가 아이들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과 살고 있다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에 두뇌와 가슴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딸아이는 나의 사과를 받지도 않았고 며칠을 눈을 안 마주쳤다. 한 지붕에서 식구도 몇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어색하고 답답한 시간들이 흘러 갔을까. 몇 번을 시도해 보았는데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대꾸가 없다.

 

우리 부모님들이셨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하셨을까?

그러던 어느날 마카티쪽의 일을 마칠 즈음 갑자기 파라냐케에 오픈했다는(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BBQ” 매장이 떠 올랐다. 배달은 안되니 내가 가서 사다가 우리 아이들 먹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가는 도중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간식 먹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둘째 애를 시켜 전한다. “뭐 사 올건데요” 계속 묻는 둘째에게 기다려 보라는 말만 한다. 냉큼 한 달음에 도착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사가지고 식을까봐 에어콘도 안틀고 집으로 가져 왔다.

 

이윽고 문 열기 직전 “무조건 애교다”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곧 문이 열리고, “자자쟌 쟌짜쟌!!!!!!!!!”“뭐게?” 둘 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 본다. 빨간 박스의 BBQ라는 로고가 예쁘고 선명하게 보인다. 한국에서 먹어 본 BBQ를 이 곳 필리핀에서 처음 먹어 보는 날이다. “Wow!!!!”(약간 바람을 잡는 둘째 딸..)   “어서 들 먹어. 아빠가 이거 식을 까봐 더운데도 에어콘도 안 틀고 사 온 거야.” 두 딸들은 그리웠던 한국의 BBQ를 5년 만에 먹게 된 날이었다.

“다은아, 채은아…맛있지?” 두 딸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모처럼 아빠에게 환하게 대답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이 BBQ 치킨을 먹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아빠에 대한 화를 풀고 아빠를 용서해 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러기에 큰 딸은 너무 커버렸다는.. 여인처럼… 큰 딸아이도 계기와 반전을 기다렸을 것이고, 아빠와 이쯤이면 그런 기회를 서로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에게 한국의 추억과 기억이 맛있게 담겨져 있는 BBQ 치킨을 먹으며 이젠 어른이 되버린 딸과 화해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BBQ 치킨이 아주 맛있다.

이젠 여인이 되어 버린 다은아, 채은아, 사랑한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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