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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맛있는 덕담 ( 말 1 편)

등록일 2009년01월09일 11시2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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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1-09
 

 

맛있는 음식을 다루는 칼럼에서 뜬금없이 ‘말’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무슨 수작이냐고 반박하실 독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어떤 설명은 필요할 것 같다.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언어 사용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手話’라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려는 삶 혹은 살아가고 있는 삶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으로 또 문학적인 작품으로, 그림이나 다른 퍼포먼스라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지극히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겠지만, ‘말’이라는 수단이 가장 정직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필자가 다루려는 이 글은 아무래도 필자의 외조부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돼야 할 것 같다.

그 분은 이북땅의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뒤늦게 공부를 하게 된 만학도셨다.

그런 가난하고 나이 먹은 학생을 받아 줄 수 있는 곳은 그 당시 감리교 신학 대학이었다.

그 곳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독일로 유학을 가셔서 괴팅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이화 여자 대학교의 기독교학과 교수로 계시다가 은퇴하신 후 일흔 여덟살의 삶을 마감하셨다.

30여권의 독일 신학 서적을 번역하셨고 은퇴 후에도 자서전을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더 출판하셨다.

 

은퇴하신 후 필자와 몇몇 후학들에 의해 할아버지의 세미나 모임이 이루어져 평생을 학문에 몸 담으신 할아버지의 철학과 신학에 대한 폭넓은 견해에 대하여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주제는 ‘말(言語)’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구약 이라는 경전, ’창세기’의 첫 시작은 ‘말’(말씀)에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약의 시작을 알리는 예언자, 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역시 ‘말’임에 다름이 없다.

그만큼 말이라는 것은 위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힘’이다.

사실 ‘글’이라는 것도 ‘잠자고 있는 말’이다.

누군가가 잠자고 있는 글을 읽고 말을 건네 다가가면 마술에 걸려 잠에 빠져 있던 백설 공주가 눈을 비비며 깨어 나듯이 ‘글’은 깨어나 ‘말’이 된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아 가고 있다. 되지도 않는 말도 하고, 정적을 깨기 위해 그냥 지껄이는 말도 하고, 하면 안 되는 말도 하고, 때론 말 실수로 인해 구설수에 빠지기도 한다.

완곡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화나게도 만들고, 말을 잘해 상대방으로 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소기의 목적을 얻기 위해 아첨이나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폭력보다도 더 아픈 상처를 만들기도 또 고래를 날게끔 만드는 예쁜 칭찬의 말도 한다.

 ‘말’이라는 것은 ‘자생력’이 있어 말을 하다 보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또 다른 말이 창조되기도 한다.

 

새해 인사로 우리는 덕담을 주고 받는 아주 좋은 전통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

굳이 국어 사전을 찾아 보지 않아도 ‘德談’(덕담)이란 덕이 되는 좋은 말을 나누어 듣는 이나 말하는 이 모두가 덕스럽게 되는 말일 것이다.

새해가 되어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면 어르신들은 ‘건강하고 사업 번창하게’라는 것이 웃 어른들의 덕담이었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무병장수의 덕담이 아랫 사람들이 해야 할 ‘말’이었다.

 

7, 8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某 CF 모델의 카피가 ‘부자되세요’라는 덕담으로, 가장 실감나고 고마운 덕담으로 일반인들에게도 회자됐다.

다소 노골적이었던 그 말은 실제로 모든 소시민들이 기대하고 꿈꾸었던 ‘부자’에 대해 마치 금새라도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소망을 가득 품은 덕담이었으리라.

우리에게 좋은 경제적인 환경만큼 필요한 다른 환경은 없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소중한 것이다.

 

누가 돈을 마다할 것이며 돈을 벌 수 있는 축복을 사양하겠는가.

그런데 고귀한 인격으로 국민들로 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지식층들도 어느날 탐욕스럽게 거둔 돈이 문제가 되어 한 순간에 존경받던 입장에서 ‘탐욕스러운 놈’으로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생 지켜왔던 이미지가 하루 아침에 평가절하되어 썩은 가면의 실체가 되기도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돈이 갖고 있는 힘과 부가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위력적이다. 형편없는 인격을 가지고 있는 자도 돈으로 많은 부분을 치장할 수 있다. 돈은 죽을 병에 걸린 생명도 살릴 수 있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가정도 살려 낼 힘이 있다. 못생긴 얼굴도 고칠 수가 있고, 주변의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대중들의 돈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어떤 종교단체들은 그 물질의 축복(기복 신앙)을 주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그것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성격이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아주 빤히 잘 알면서도 말이다)

돈처럼 순기능과 역기능을 극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우리의 통화 수단은 없어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사람이 살아 가는 ‘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것의 더 많은 소유를 기대하고 아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은 역시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 수단이 충족됐다고 하더라도 행복하냐는 별개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새해의 덕담이 ‘돈 많이 버세요’,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로 그쳐 버린다면 그건 너무도 물론적(物論的)인 것에 대한 소모적인 기대심에 불과하다.

최소한 우리네 삶의 가치는 그것 보다는 더 고귀하고 더 고고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그것에 비해 너무도 인격적(人格的)인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 주에는 ‘맛있는 말’ ‘고맙다’라는 말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근사하고 멋진 일들이 많이 생기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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