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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형 목사의 한손엔 신문] 용서를 모르는 종교인들

등록일 2008년12월01일 18시2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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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12-01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일단의 무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억누를 수 없는 의분을 가지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한 여인이 간음하다가 잡혀왔는데 당시의 풍습으로는 공개처형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 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예수께서 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모두 슬며시 물러섰고, 여인은 목숨을 건졌다.

 

위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다. 하나는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죄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래서 누구를 정죄하고, 심판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했던 사람들처럼 정죄하는 것 그리고 심판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두 번째의 교훈은 용서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다. 그 여인은 용서의 한마디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세상에서 생명을 살린다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런데 용서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날마다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너무 마음이 없다.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기독교의 용서만 안다. 짐작컨대 다른 종교에도 용서의 덕목이 다 있다고 본다. 그러나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용서를 모르고 살아간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삶에서 용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는 그것의 핵심이 용서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죄의 값은 죽음인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의 값으로 영원한 죽음 즉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용서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핵심은 용서다.

 

이러한 핵심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에서 조차도 결코 용서하지 않으려는 생각과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연말이 되면 많은 교회에서 자기의 죄목을 종이에 적어 회개하고, 태워버리는 의식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의 죄는 용서되기를 바라지만 다른 사람의 죄는 용서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다. 거듭 해가 바뀌어도 용서하지도, 잊지도 못하고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이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남을 용서해야 하는 것도 정리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실은 용서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용서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것은 자기를 세우고,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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