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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고시 합격한 필리핀 의대 출신 박진석 선교사

등록일 2009년05월04일 17시2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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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9-05-04
 

올해 1월 제73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자 가운데 필리핀 의대 출신 한국인이 합격, 뒤늦게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1992년 라살대 생물학과를 입학해 2년간 교양과목을 이수하고 1994년 앙헬레스 대학교 의학 본과에 입학, 2000년 5월에 의사박사학위를 받은 박진석 선교사다.

합격 사실을 통보받은 박진석 선교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난한 아내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동역 선교사들 및 함께 신앙을 나눈 모든 경신교우들의 갈채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합격 영광의 대가···험난했던 세차례 시험

시작부터 불리한 게임이었다”

 

2005년 예비시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첫 필리핀의대 출신 합격자인 박진석 선교사의 이 같은 합격의 영광 뒤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필리핀 출신 의대 또는 치대생이 국내 의사국가시험을 본다는 자체가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1994년 7월 국내 보건복지부는 외국대학 응시자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면허를 취득해야만 국시를 볼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한 반면 필리핀 내 자격증 시험 및 교부를 관장하는 PRC(Professional Regulation Commission·전문직업조정위원회)는 전문직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에게 면허교부 시험을 허용치 않고 있다.

 

박진석 선교사가 다행히 국시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94년 전에 입학했던 학생인 터라 개정 법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자격은 얻었으나 세차례의 시험은 험난하기만 했다. 특히 1차 예비시험은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시작부터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1차 시험은 이미 90%의 응시자가 떨어져야 하는 시험이었어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박 선교사와 함께 시험을 치른 응시자들은 모두 일본, 영국, 러시아, 독일 등지에서 모여든 한국인 의사들이나 1차 시험에서 합격한 이들은 딱 2명 뿐이었으니 박 선교사와 독일 뭔헨 의과대학 출신 의사였다.

 

그리고 또 다시 다가온 2차 시험. 이번 시험은 모의환자 또는 마네킹을 가지고 심사의원 앞에서 직접 실력을 평가 받는 시험이었고 3차 시험이야말로 본 의사국시였다.

“처음으로 친 시험이었지만 1차 시험을 제외하고는 제 경험상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어 교과서로 공부한 의료용어들을 철저하게 한국말로 바꾸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1차, 2차 시험을 합격하고 나니 3차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더군요. 남들은 1년 동안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치른다는 시험을 저는 약 두달 반만에 준비하고 치러야 했으니 마음이 많이 위축됐었습니다”

그러나 박 선교사의 어릴적 꿈도 ‘의사’, 지금도 하고픈 것이 ‘의사’이기에 인생 불혹의 나이가 넘도록 공부한 그는 올해 1월20일 발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오르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필리핀 의학교육, 타국 비교 만만치 않아

의·치대 유학생들에게 자랑이나 영움담이 되지 않길…

 

박진석 선교사는 본지와의 몇차례 서면 질의와 전화 인터뷰를 거치면서 필리핀 의학교육이 타국과 비교해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필리핀 의대는 입학하기 전부터 ‘NMAT’이라는 필리핀 국가고시를 어렵게 통과해야만 하고 제가 다닐 당시에는 매년 반 정도의 학생들이 낙제를 했습니다. 필리핀 의대생들에게 졸업은 꿈같이 여겨질 정도입니다. 두번 낙제하면 학교를 옮겨야 하고요. 그때 저희 학교에서는 97명이 본과를 시작했었는데 21명만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중 13명이 낙제 경험이 없는 천재(?)들이죠”

또한 정부병원에서의 수련기간은 마치 전쟁터의 아전병원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난 수의 환자와 질병을 만나야 했었다며 그간의 노고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이런 이야기들이 현재 필리핀 의대, 치대를 다니는 유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필리핀에서 한국인의 의료시장 진출은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고뇌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 필리핀에서 졸업을 하고도 또다른 나라에서 시험을 치러야만 의사면허를 딸 수 있으며 그 의사면허를 가지고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하려면 박 선교사가 거쳤던 힘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참으로 쉽지 않는 길이다.

지면을 빌어 필리핀 의대 또는 치대를 다니고 있는 한국학생들에게 조언 및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전했다.

“제 이야기가 (유학생들에게)자랑이나 영웅담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꿈을 가지면 반드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죠. 모든 거룩한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은 꿈이라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한국에 돌아가 개원할 생각 없다

가난한 현지인 위해 조건 없는 치료의 손길을

 

이제 의사면허도 땄겠다. 한국에서 개원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을.. 박진석 선교사는 “한국에서 개원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의사’가 되기 전에 ‘선교사’라는 명칭이 있어서다.

의사로서 그는 “의학을 공부한 것에 긴 의미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면 가난한 병자들에겐  조건없는 치료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선교사로서 그는 “이곳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때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기에 한국 의사국시를 응시한 것입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마음은 전 세계에 흩어져 이름도 없이 헌신하는 모든 선교사들의 공통된 아픔일 것입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박 선교사는 또 “한국에서 개원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더라도 무의촌 같은 곳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고 덧붙였다.

17년간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한 박 선교사. 요즘 그의 일상생활 대부분은 병원에서 이뤄진다. 앙헬레스 소재 경신선교병원 병원장이기도 한 박 선교사는 12명의 전문의료진의 손길을 빌려 가난한 현지인들에게 사랑의 치료를 전하고 있다.

2004년 2월 서울 경신교회에 의해 설립된 경신선교병원은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가정의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등이 있으며 한달 평균 무료 진료환자가 500여명, 유료환자가 700여명 정도가 된다. “주로 필리핀 환자들이지만 교민들도 진료를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진료한 교민환자의 수는) 한 3000여명인 것 같습니다”

건강종합검진에서부터 암 표지까지 검사가 가능한 최신의료장비가 구비된 경신선교병원은 설립된목적 자체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 진료비가 일반 병원의 절반 정도로 저렴하다.

박진석 선교사의 앞으로 계획은 병원 확장. 촌각을 다투어 한 생명이라도 더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의사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세월을 투자했습니다. 시간을 아껴 복음을 전하는데 진력하고 싶습니다”

 

장혜진 기자 wkdgpwls@manil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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