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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세우고 즐겁게 일하라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설계하는 FASTEM 그룹 백선규 회장

등록일 2008년11월21일 17시0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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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8-11-21
 

“사업을 할 때, 아무리 어려워도 고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필리핀 전역을 방카를 타고, 잠을 못 자가며 돌아다녀도 그게 다 사업가의 즐거운 노력이지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타고난 일꾼 체질이기에 남들은 벌써 은퇴를 하고 편안히 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다는 노신사가 있다. 현재 사우디와 필리핀에서 건설자재생산, 건설, 광산개발, 무역 등을 하는 FASTEM Construction, FASTEM Wall System, FASTEM Trading, FASTEM Housing & Development, FASTEM Mineral Processing INC.로 구성된 FASTEM그룹의 백선규 회장이다.

 

사우디에서 필리핀으로

 

“필리핀에 진출하기 위해 10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를 거쳐 1998년 필리핀에 진출했어요” 1883년 사우디에서 사업을 시작한 후 15년 만에 필리핀으로 진출했다. 아무래도 문화적 이질감이 덜한 동남아 나라를 염두에 두고 조사를 하다 필리핀이 법체계가 잘 돼 있고 언어, 문화,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다는 이유로 필리핀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를 하고 넘어왔지만 처음엔 그도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필리핀에 법체계가 잘 돼 있다는 이유로 필리핀을 선택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법을 떠난 다른 문제가 많았어요. 부패와 제도의 문제가 큰 걸림돌 이었습니다. 이나라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초기에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필리핀 진출 1년만인 1999년 회사를 설립해 현재 9년째를 맞고 있다.

 

처음 마닐라와 세부에 건축자재 생산공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글로브, 스마트와 같은 무선통신사의 타워건설, 세부 타워펠리스 콘도미니엄건설, 레이테 4443핵타 광산개발 등의 사업을 하며 2008년 연매출 1억불을 목표로 성장하는 FASTEM그룹을 만들어 냈다.

 

 

걸프전으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찾아오다

백회장이 필리핀으로 진출하기 전 그는 뜨거운 중동의 모래바람을 잠재우며 사우디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1977년 삼원기업의 주재원으로 사우디에 진출해 1983년 자재장사를 한 것. 그러다 판매한 자재를 수리하기 위해 철물공장을 설립하게 되고 때마침 발발한 걸프전이 오히려 기회가 돼 군납을 하며 회사는 꽤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됐다.

 

“전쟁이 나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래서 집사람과 아이들은 다 피신시키고 혼자 사우디에 남았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집디다. 전쟁터에서 그렇게 돈을 벌었어요” 걸프전을 겪으며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 4년 동안 단 한 건의 공사도 하지 못해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재건을 해야 하기에 건설경기가 좋았을 텐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이 다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언제 또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시 집을 짓겠습니까. 하지만 중동은 산유국이니까 언젠간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패스템, 최고의 자원은 사람이다 

 

“전쟁이 나니까 직원들이 다 돌아간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가스마스크, 물, 식량, 텐트, 기름 등을 마련해 피난준비를 다 해줬습니다. 한국정부에서 저에게 지급해 준 가스마스크까지 몽땅 직원들에게 지급했어요. 월급도 먼저 주고, 전쟁 때문에 회사가 잘못되면 혹시나 지급을 못 할 까봐 퇴직금까지 미리 정산해 줬습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직원들은 다시 마음을 잡고 일을 해줬습니다” 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지에서 머나먼 사우디까지 돈을 벌러 온 직원들이 전쟁으로 불안해 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다행히 그 난리 속에서도 단 한 명도 피해 없이 무사히 전쟁을 버텨냈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난관이 버티고 있었다.

전쟁 후 공황상태에 빠진 사우디에서 4년간 단 한 건의 공사도 수주하지 못했다. “처음 1~2년간은 그래도 근근이 버텼는데 3~4년째가 되니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중에 아픈 사람, 학교 다니는 사람부터 챙겼지요. 직원들 스스로 동참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버티고 4년 만에 첫 공사를 수주하자마자 선수금으로 바로 직원들 월급과 또 다시 퇴직금을 정산해주고 일을 시작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20년 이상 같이 일하던 국제 기능공들 중 나이 들어 퇴직한 경우 말고는 퇴사한 직원이 한 명도 없다고 하니 패스템의 최고의 자원은 사람이란 말이 실감난다.

 

사업과 자녀교육에도 원칙이 있다 

 

보통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능력이 있나 보다. 부인과의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 백선규 회장에겐 사업의 성공보다 두 아들의 성공이 더 뿌듯해 보인다.

 

중동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두 아들 중 장남(34세)은 미국에서 미생물학 박사과정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가 카이스트 테크노 MBA과정을 거쳐 현재 국내 굴지의 정유사에서 최연소 경영기획실 상무로 재직 중이고,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꼴지를 도맡았다던 차남(32세)은 학위 하나만 따는데도 6~7년이 걸린다는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에서 4년 만에 석사학위 2개를 포함해 총 4개의 학위를 받고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사에서 근무한 뒤, 조지타운대 MBA를 거쳐 현재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고 있다.

 

이토록 사업과 자녀교육 두 가지를 다 잘 해낼 수 있었던 건, 백회장만의 원칙이 있어서다. “저는 목표를 위해서 한번 세운 원칙은 꼭 지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잔 가지는 쳐가면서 유동성을 발휘하지만 큰 기둥은 절대 변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백회장이 말하는 자녀교육의 원칙은 “자유방임”이다. 스스로 길을 찾도록 놔둔다는 얘기다. 대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힘껏 밀어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패스템과 필리핀의 비전

 

 “필리핀은 교육받은 인재가 많은 곳이고 지리적으로 태평양과 인도양의 허브가 될 아주 좋은 위지에 있습니다. 아직은 인프라 등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필리핀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희망이 있는 필리핀에서 성장한 패스템그룹 또한 설립 1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제2의 도약을 할 것이다. “사업은 최소 10년 이후를 보고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필리핀에 진출해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1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본격적인 추진의 해이지요.” 2009년 FASTEM의 도약이 눈앞에 있다.

 

[이동은 기자 gunnie@manilaseoul.com]

(끝)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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