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8일 필리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나르시사 클라베리아(중앙, 당시 89세), 에스텔리타 디(우측 2번째, 당시 90세) 할머니가
중부루손한인문화원(당시 문화원장 김기영)의 후원으로 수요집회참여를 위해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중부루손한인문화원=연합뉴스
필리핀의 마지막 말라본 출신 위안부 생존자인 에스텔리타 디 할머니가 지난 11월 24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94세였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졌지만,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워온 활동가였다.
디 할머니는 필리핀 위안부 생존자 단체인 릴라 필리피나(Lila Pilipina)의 적극적인 회원으로 활동하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그녀는 최근 몇 년간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의 뜻, 우리가 이어갈 것"
에스텔리타 디의 장녀 엘리자베스 아틸로는 어머니의 빈소에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의 투쟁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틸로는 "릴라 필리피나에서는 생존자들의 자녀와 손자들을 ‘파마나(유산)’라고 부른다. 우리는 어머니들의 투쟁을 물려받아 이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아틸로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1990년대부터 가족 몰래 집을 나서 릴라 필리피나의 집회와 모임에 참석했다.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된 계기는 릴라 필리피나의 퀘손시티 본부인‘로라스 하우스’에서 열린 한 강연에 초청받았을 때였다.
디 할머니는 평생 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끝까지 투쟁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2023년 GMA 방송국 드라마 'Pulang Araw'의 배우들과 대화하며 자신이 1945년 13세의 나이에 네그로스 오리엔탈 탈리사이 지역 일본군 주둔지에 끌려갔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눴다. 그러나 방송 후 그녀는 딸에게 "이제 내 인생의 그 장을 닫자"고 말했다.
릴라 필리피나는 디 할머니의 죽음이 투쟁의 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에스텔리타 할머니의 죽음은 정의를 위한 싸움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할머니의 마지막 여정이 일본과 필리핀 정부가 부정과 외면을 멈추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릴라 필리피나는 또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권고를 환기하며 필리핀 정부가 생존자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동상 철거의 상처
2018년 마닐라 베이워크에 세워졌던 위안부 기림 동상이 두테르테 정부 시절 일본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 철거된 사건은 디 할머니를 비롯한 생존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아틸로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투쟁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은 생존자들의 죽음과 함께 릴라 필리피나의 투쟁도 끝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위안부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에스텔리타 디 할머니는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자녀들에게 자주 부탁하며 소박한 일상의 기쁨을 나눴다. 그녀의 삶은 고통과 상처로 얼룩졌지만, 그 속에서도 정의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은 삶이었다.
릴라 필리피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남은 이들에게 "위안부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정의를 위한 길에 함께해 달라."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에스텔리타 디 할머니는 마닐라서울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필리핀 ‘위안부’ 피해 할머니(Lola) 한국 수요집회 참석행사"에 참여해 클라베리아 할머니와 함께 2019년 11월 20일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천41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우리는 죽기 전에 정의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닐라서울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