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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임정 百주년] (15)표식도 없이 쓰레기만 수북이

안중근 의사 매장 추정지 가보니…아파트ㆍ군부대 등 들어서 유해 발굴 난항 예상

등록일 2019년05월25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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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뒤 하얼빈 공원 곁에 묻 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 로 반장(返葬)해다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 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旅順)감옥으로 압송돼 1910년 3월 26일 그곳에서 사 형에 처해졌다. 그리운 고국땅으로 돌 아오기를 원했던 안 의사의 유지는 국 권이 회복된 뒤에도 실현되지 못한 상 태인데, 3·1운동 100주년 및 안 의사 거사 110주년인 올해 남북 공동 유해 발굴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16일 찾아간 뤼순감옥 일대 안 의사 매장 후보지에는 이미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었고, 안 의사 가 묻혔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리는 표 식조차 없는 상태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뤼순감옥에 서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감 옥 뒤편의 원보산이었다. 안 의사 순국 당시 뤼순감옥 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今正房子)가 제시 한 사진과 증언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2008년 유해 발굴작업을 진행했던 곳 이다. 당시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한국 정부가 중국 측의 협조를 얻어 공사를 중단시키고 3월 25일~4월 29일 지표투과레이더(GPR) 등을 동원해 약 5천㎡를 살펴봤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다. 박용근 다롄(大連) 안중근 연구회 회장은 "당시 후사코가 제공한 사진 등을 근거로 주변 산 모양 등을 고려 해 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았다" 면서 "현재는 아파트가 들어선 지점" 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지역은 감옥 시설물이 보일 정 도로 지척인 곳인데, 아파트 앞 공터에 는 인근 주민들의 생활 쓰레기가 수북 하게 쌓여있었다. 이 아파트 바로 옆에는 중국군 부대 주둔지가 있다. 2008년 발굴 당시 살 펴보지 못한 곳으로, 일각에서는 이곳 에 유해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중국이 군부대 안에서 지표 투과 레이더 등의 사용을 허가할 가능 성이 작을 뿐만 아니라, 실제 유해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원보산 외에 안 의사가 매장됐을 가 능성이 있다고 지목되는 곳은 뤼순감 옥에서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떨어 진 뤼순감옥 공동묘지, 둥산포(東山坡· 동쪽산 언덕)다. 다행히 감옥 공동묘지가 있던 곳은 '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구역으로 지 정돼 개발이 제한된 상태다. 다만 뤼순일본관동법원구지 진열관 초대 관장을 지낸 저우샹링(周祥令)은 "(안 의사 유해를 찾기 위해서는 아니 지만) 일제의 죄행을 밝히기 위한 작 업으로, 중국이 66년 3월과 71년 3월 등 두 차례 둥산포 지역을 발굴했다" 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형수들의 시신은 원통 형으로 생긴 '통관'에 담기지만 안 의 사는 특별히 누운 채로 관에 들어가 는 '침관'을 이용해 매장한 것으로 기 록돼있다. 저우 전 관장은 "발굴 당시 통관은 나왔지만 침관은 나오지 않았다"면서 " 순국 후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했는 데, 일본이 유해를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진열관의 2대 관장으로 둥산포를 문 물보호단위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오중화(趙中華) 관장은 "지금은 감 옥 묘지였음을 알리는 비석만 있고 제 둥산포의 '뤼순감옥 공동묘지' 비석 및 당시 매장 방식 전시 단도 없다"면서 "안 의사 매장 가능성 뿐만 아니라 순국한 애국 투사들이 묻 혀있는 곳인 만큼 보존이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원보산과 둥산포 외에 중국 정부가 단독으로 발굴한 곳도 있다.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2008년 '고려인 무덤'으로 불리 던 가로·세로 3m, 깊이 2m 정도의 무 덤을 발굴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 았다"면서 "해당지역은 현재 아파트 건 설과정에서 나온 흙을 쌓아둔 '흙산'으 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 회장은 "북한이 1983년 김일 성 주석의 다롄 방문 당시 중국 측에 안 의사 유해 공동 발굴을 제안했고 1986년 실제 중국으로 와 12일간 조 사했다"면서 "하지만 아무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안 의사의 묘소가 독립운동 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매장하지 않았다거나, 매장했더라도 이후 이장 했을 수 있다는 각종 추측 등도 있다. 박 회장은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 해 "아직 확정된 후보지가 없기 때문 에 (당장) 발굴하기는 힘들다"면서 "자 료를 찾고 서류를 확인하는 작업이 우 선이다"고 말했다. 또 "한국 정부의 유해발굴 담당자가 몇 년마다 바뀌는데, 지속성이 필요하 다"면서 "남북한과 중국 등이 같이 연 구해야 한다. 자료가 적고 학자들도 적 은데, 각자 연구하고 있다. 자료를 공유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우 전 관장은 "안 의사의 유해가 뤼순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면 서도 "그의 동양평화론은 영원히 우리 와 함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한준 기자1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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