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일자: 2007-02-22
 

요즘 두리안(Durian) 맛에 흠뻑 빠져 매일 아내와 아들녀석에게 눈총을 받아가며 두리안을 즐기는 것이 나의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겠지만, 두리안의 맛은 과일의 왕(king of fruits)답습니다.
어느 과일이나 제철에 맛이 있듯이 요즘 두리안이 제철을 맞아 맛이 아주 좋습니다.
열대 과일은 대체로 당도가 높고 풍부한 향을 갖고 있는데, 흔히 필리핀에서 즐기는 과일은 망고, 바나나, 파파야, 파인애풀, 망고스틴 정도입니다.
두리안은 독특한 냄새와 특이한 맛 때문에 본명 외에 붙여진 이름이 많은 듯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붙여놓은 '과일의 왕(King of fruits)','신의 과일', '어느날 갑자기(Suddenly one day)'등 입니다.
물론 과일의 왕이란 표현은 과일 중 제일 맛이 있다는 표현이겠지요.
"신의 과일"이란 이름은 동남아시아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신들이 먹는 두리안을 인간이 몰래 훔쳐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그만 두리안 맛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신들이 알고 더 이상 인간들이 먹지 못하게 두리안에 큰 가시를 씨웠습니다. 그래도 인간이 훔쳐먹자 두리안에 심한 악취가 나게 했더랍니다. 그래서 두리안은 굵은 가시로 덮여 있고, 심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리안의 냄새를 양파가 썩는 냄새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두리안을 "지옥같은 향기를 가진 천국의 맛"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느날 갑자기(Suddenly one day)"란 표현도 서양 사람들이 붙여놓은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 혐오스런 냄새의 두리안으로만 알다가 갑자기 그 맛에 반하여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두리안 맛을 본 사람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뉩니다.
부드럽고 특이한 맛에 반하여 아주 좋아 하게 되거나, 지독한 냄새로 인한 혐오감으로 아주 멀리하게 됩니다.
70년대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다닐 때 두리안 냄새 때문에 과일가게를 피해 갈 정도로 혐오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몇 년전 아내가 과일가게에서 두리안을 사 가지고 왔을 때도 냄새가 너무 싫어서 나는 아내에게 절대로 집안에 들여놓지 말고 수영장 구석진 곳에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2년 전 민다나오로 출장을 갈 일이 있어서 지방 도로를 가다가 길가에서 파는 두리안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같이 동행한 필리핀 친구가 두리안을 먹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 수없이 차를 세우고 두리안을 몇 개 사서 길가에 앉아서 다시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맛!! "천국의 맛"을 왜 내가 몰랐던가?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노르스름하고 통통하며 말랑말랑한 그 과육이 어찌 이렇게도 깊은 맛을 갖고 있을까?
길가에 앉아서 두리안 하나를 모두 먹고 나서도 입안에 남아 있는 향긋한(?) 그 맛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Suddenly one day)였던 것입니다.
그 후 두리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밤송이처럼 갈라진 잘 익은 두리안은 하나만 있어도 냄새가 강하지만, 덜 익은 두리안은 쌓여 있어도 향내를 풍기지 않습니다.
내가 자주 가는 Market Market 쇼핑몰에 있는 과일가게를 찾으니 두리안은 많이 쌓여있는데 향내가 시원치 않습니다.
그 가게의 단골인 내가 두리안을 사려고 왔다는 것을 잘 아는 종업원이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잘 익은 두리안이 없다는 것이지요.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자가 없다."는 속담도 이 맛에 빠지면 사먹지 않고는 못배긴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두리안은 중독성이 있다고 하지만 중독성이 아니라 맛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겠지요.
말레지아에서는 "아들을 팔아서 사 먹는 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로 맛이 깊은 과일입니다.
"지옥과 같은 냄새 후에 천국과도 같은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의 교훈을 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려움 뒤에 맛보는 깊고도 강한 성취감 같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