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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규 컬럼] 2. 거리의 천사

등록일 2007년02월22일 14시0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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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22
 

필리핀에서 생활한지도 어언 5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참으로 많은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즐겁고 기쁘기도 했으며 때로는 마음이 안타깝고 쓸쓸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오늘은 한 필리핀 청년과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전에 제가 살던 동네는 파식의 주택 지역인 발리발데 2였습니다. 
아침마다 올티가스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빌라 정문을 통과한 후 우회전을 해서 가야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신호등을 만나게 됩니다.
차들이 잠시 멈추게 되면 신문 파는 사람, 낱 개피 담배를 파는 사람, 그리고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차창 옆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또 몰려드는 한 무리는  길거리의 걸인들입니다.
아침마다 이곳 출근길에 매일 만났던 걸인 청년과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동네로 이사하여 나는 첫 번째 출근길에 이 걸인 청년을 만난 후부터 2년간이나 계속 만났으니 그와는 참으로 긴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는 필리핀에 살면서부터는 습관적으로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들을 차안에 놓고 다닙니다.
이 동전을 차에 두는 목적은 시시때때로 차창으로 몰려와서 초라하게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걸인들에게 주기 위한 것입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몇 푼의 동전을 가지고서라도 날마다 거르지 않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나마 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내 마음에 위로가 된 듯 합니다.
이사하여 첫 날 출근길에 만난 걸인 청년에게 나는 10페소 동전 한 닢을 준 이후 나는 거의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이 청년에게 10페소 동전 한 닢씩을 주었습니다.
나이는 대충 20세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 걸인은 몸집이 아주 작고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으며 말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두 손은 오그라진 조막손이었습니다.
날마다 참으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뒤뚱거리며 차로 달려와서 동전 한 닢을 받기 위하여 나에게 그 가엾은 조막손을 내밀곤 했습니다.
어느덧 나는 아침마다 그 걸인 청년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차만 보면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다른 차들을 제쳐놓고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곤 했으니까요.
나도 그 청년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동전을 건네곤 했습니다.
우리 사이엔 비록 대화는 없었어도 따뜻한 감정의 교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젖은 손을 내미는 모습이 측은하여 나는 100페소 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어 조막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가 보인 의외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그는 내가 차 안에 늘 동전을 놓아두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100페소를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구걸하는 걸인이지만 크다고 생각되면 사양할 줄도 아는 그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날마다 내가 주는 10페소를 귀하게 여기는 그의 마음이 내 가슴에 전해져 와서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받았습니다.
10페소를 받고 환하게 인사하며 웃는 그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차에서 내려서 한 번 그를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계속된 어느 날 그가 몹시 나를 기다린 듯 반갑게 달려와 조막손 두 손을 모아 빵 한 조각을 주며 나에게 먹으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더러운 손으로 부끄러운 듯 주는 그 빵을 받아 든 나는 그의 정성을 생각해서 한 입 베어 물고는 고맙다고 인사한 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그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네자 이번엔 그가 사양하며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은 그 청년의 정성이 내 가슴을 찡하게 울렸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한국 분이 만든 빵을 사와서 맛있게 먹은 후 아내 모르게 빵 한 개를 싸가지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길에서 만나는 그 청년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나와 청년의 이러한 인연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무 말없이 몰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환히 웃으며 달려온 그에게 빵과 함께 동전 한 닢을 건네니 빵은 나와 반으로 가르고 동전은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먹고 사는 청년이었지만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누어 가질 줄도 아는 마음이 곱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때때로 그가 안보이는 날이면 나는 그가 혹시나 몸이 아파서 못나온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이 되곤 했습니다.
며칠 안보이던 그가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웃으며 달려오면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에게 동전을 전하곤 했습니다.
몇 달 전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출근하는 길이 달라져서 그를 만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길을 일부러 돌아서 그가 서 있던 길로 출근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달려와 반기지 않는 그 길을 지나며 내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날마다 준 10페소 보다 더 큰 것으로 나에게 갚은 그 청년이 참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이 거리의 천사가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밝은 마음으로 잘 살고 있었으면 합니다.

김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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