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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규 컬럼]5. 제 2의 삶

등록일 2007년02월22일 14시0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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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22
 

2005년 5월에 한국에 들어가서 첫손자의 돌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하여 서울 삼성의료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검진이라서 특별한 병이 없는 한 이틀이면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뜻밖에도 갑상선암이 발견되어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나를 진찰해왔던 주치의(내과 의사)가 나의 병실로 찾아와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조직 검사 결과 이미 갑상선암이 임파선으로 많이 전이된 것 같다며 목 부위라서 수술이 어려운데다가 수술 중에 출혈도 많을 것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갑상선암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암이 라는 병이 얼마나 치료되기가 어려운 병인가! 이제 나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갑자기 아득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듯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병실에 혼자 누워서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60여년을 사는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만약 내가 갑상선암을 수술 받고 완쾌되어 앞으로 20여년 정도 생명이 연장된다면 나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하여 간단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비록 크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명예를 얻은 것도 없고, 큰 업적을 쌓은 것도 없는 평범한 인생이었지만 인간으로서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운 행동을 하여 남에게 큰 폐를 끼친 적도 없고, 결혼하여 평범하게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아서 나름대로 정성껏 키웠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살았지만 꼭 갚아야 할 신세를 진 것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당키 어려운 큰 불행을 당한 적도 없으니 이만하면 내 인생이 족한 것 아닌가.’ 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흔한 말로 내 마음을 비우니 쉽게 답이 나왔습니다. ‘지난날을 굴곡 없이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니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더 살 수 있게 하여 주신다 해도 지금껏 살아왔듯 열심히 평범하게 살면 되리라.’하는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결론은 한마디로 ‘이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게는 이런저런 형태의 삶이 있지 않은가? 나도 그런대로 이제껏 평범하게 잘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감사할 뿐이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불안정했던 나의 감정은 안정되고 전에 느끼지 못했던 깊고 고요한 평화로움이 내 마음 속에 찾아왔습니다.

필리핀에서 달려온 아내에게 이런 내 심정을 이야기하니 아내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 잠잠히 있던 아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나로 인하여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 순간 아내는 세 가지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암에 걸린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혼하여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열심히 일하여 오로지 가족들 뒷바라지만 했지 정작 자신을 위해선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내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 아내는 자신이 혼자서 살아가야 할 앞날에 대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전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살았는데 막상 앞으로 남편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큰아들은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아들도 낳고 가장의 구실을 잘하며 살고 있으니 별 걱정이 안 되었으나, 작은 아들은 아직 성혼도 못 시켰는데 만약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면 앞으로 아버지 없이 결혼해야 할 아이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아내는 나에게 섭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병에 걸려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어쩌면 남겨두고 가야 할 가족에 대해선 전혀 생각 안하고 본인 위주로만 생각을 할 수가 있었느냐고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이 세상에 없다 해도 당신에겐 신앙이 있고 몸이 건강하며 생각이 현명하니 지금껏 잘해왔듯 앞으로도 잘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가슴이 아픈 것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30여년을 나와 함께 살아오며 세상 풍파를 모르고 여리게만 살아온 아내에 대한 애틋함에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수술 소식을 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새 생명 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의 전화와 방문과 기도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는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4시간 반이나 걸리는 어려운 수술을 하여 마침내 암을 제거 했습니다. 다행히도 암이 초기 단계라서 임파선에 전이되지 않았으므로 상처가 아물자 항암 치료 없이 퇴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앞으로 몇 년간은 계속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야만 하지만 마음은 늘 평온합니다.
이제  ‘갑상선 빠진 남자’로서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 2의 인생’을 오늘도 열심히 그리고 좀더 보람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기도를 대신해 주는  용혜인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 합니다.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화려하게 꽃피는 봄날이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사고나 실수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허락하신 삶을 다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하늘은 푸르고 맑아
      내 사랑하는 이들이 평안하고
      행복한 날이 되게 하소서

      늙어감조차 아름다워 추하지 않고
     삶을 되돌아보아도 후회함이 없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
     쓸데없는 애착이나 미련이 없게 하소서

     병으로 인하여 몸이 너무 쇠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기력이 있고 건강한 때가 되게 하소서
  
     나에 삶에 맡겨주신 달란트를 남기게 하시고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베풀고 살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주님의 구원하심과 죄의 용서하심과 사랑을
     몸과 영혼으로 확신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가족들에게 웃음 지으며
     믿음으로 잘 살아가라는 말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게 하소서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 고요히 기도드리며
     나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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